2019년 신년계획을 세운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2020년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직도 제 블로그 첫 페이지엔 2019년 신년계획이 있죠. 제게 있어서의 2019년을 한 마디로 하자면 망했어요 말곤 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대체 왜 망했는지 이야기하면서 반성하는 기회를 갖고 2020년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용기 있는 것은 좋지만 만용은 자신을 해친다.

작년 제가 세웠던 신년 목표는 나름 참신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몇몇분들이 보기엔 ‘목표 달성을 위한 치팅’ 소지가 다분했죠. 저는 저 자신의 향상을 목적으로 세운 목표였기에 치팅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해버림으로서 허망하게 끝났습니다. 가령 블로그에 포스팅을 한다던가 하는 목표들이 있었지만 결과물은 흉작 그 자체죠.

작년 목표에서 저는 용기 있는 것은 좋지만 만용은 자신을 해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이런 목표를 잡고 나아가면 될 줄 알았는데, 걷지도 못 하면서 뛰거나 날 순 없는 것이란 점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자빠졌고, 꽤 아픈 나날을 보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대놓고 일화를 모두 말하기엔 거부감이 있어서 빙 둘러서, 몇 가지만 간추려서 적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나.

사람들과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었습니다. 도중에 사람들이 떠나가도 그 자리를 지키면서 말이죠. 도중에 병들어서 입원도 했고, 그렇지 않아도 많이 소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는데, 결과적으로 제 노력은 방해였던 것 같습니다. 밀린 작업을 하다 지친 것인데, 더 나아가려는 사람들 입장에서 지친 사람은 걸리적거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친 사람은 퇴장했습니다. 제 노력은 뭐였을까요?

.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매우 마음이 맞는 친구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매우 소중했고, 그 관계를 오래토록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미성숙했던지라 그 친구는 저 모르게 상처를 받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저를 거부하고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엄살 취급 받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나는 이걸 감당할 수 없어요” 라고 말했지만, 다들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걷다가, 자빠졌습니다. 그리고 자빠져있는 지금의 저 자신을 보며 나약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저는 할 수 없다니까요.

.

어느날 갑자기 반려견이 걷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데려갔고, 바로 입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데려와서 그대로 작별해야했습니다. 미안해. 좀 더 아껴주지 못 해서.

처참한 결과.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로는 체중이 20kg 이상 늘어났습니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었더니 벌어진 현상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건강 상태의 급격한 악화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집 밖에 나갈 수 있는 것은 편의점 정도가 한계. 그 이상 멀리 움직이려면 항불안제 복용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을 커버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약의 용량도 증가하였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영위하는 ‘일상 생활’에 도달하기 위해서, 저는 매일 10알 이상의 약을 먹어야 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약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가끔 생겨서 응급용 주사를 맞았고, 그 주사로 인한 멍자욱이 아직도 양 팔에 남아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문서를 읽어서 무언가를 배운다던가, 블로그에 글을 쓴다던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살아남고 보자는 생각이 앞설 정도로 절박한 상태였죠. 제 신년 목표는 가당치도 않은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2020년.

작년이 너무나도 괴로웠기에, 올해가 어떠할지 불안감이 앞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하다고 살아있다는 상태가 바뀌진 않습니다.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야합니다. 그래서 2020년, 저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 전제조건은 이렇습니다.

  1. 치팅이 가능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2. 목표는 현실적이어야한다.
  3. 목표는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치팅이 가능한 목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교정 청소라면서 1인당 쓰레기를 몇 개씩 주워오라는 식의 청소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질 나쁜 치팅법을 떠올렸죠. 양면을 모두 사용해서 이제 더 이상 못 쓰는 종이를 교실에서 가지고 나와서, 일부러 20조각 이상으로 찢었습니다. 그리고 쓰레기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척 한 뒤, 여러조각의 종이를 제출하고 청소를 마쳤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해야했던 것은 주워오는 쓰레기의 수를 헤어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채점 방식이 너무나도 치팅에 취약했고, 결국 저같은 문제아(?)를 발생시켰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치팅이 불가능하게 정하려고 합니다.

목표는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저 자신의 상태에서 할 수 없는 일은 목표로 잡아선 안 됩니다. 집 앞 편의점을 간신히 가는 상태의 자신에게 해외 컨퍼런스 참여하기 같은 목표를 잡는 것은 큰 꿈을 가지는것도, 멋있는것도 아닌 그냥 미련한 것입니다. 작년의 제 목표는 제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 한 점에서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현실적이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목표의 결과는 저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은 별 소득이 없으면서 대외적으로 멋져보이기 위한 목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년의 목표는 너무 잘게 분할되어있어 대외적으로 보여지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뒤늦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단순하고 간결하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목표1. 체중 감량.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있지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체중이 늘어난 뒤의 저 자신의 삶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입던 옷이 맞지 않는다던가,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체중은 수치로 정형화되기에 스코어링 하기 좋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체중을 감량하면 큰일나겠죠. 체중을 줄인다는 것이 골밀도를 줄인다던가 하는 자살행위로 이어져선 안 됩니다.

저 자신의 환경도 고려해야합니다. 저는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항불안제는 과다사용시 내성과 중독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체중 감량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면 집 안에서 해야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플랜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먹는 것을 무리해서 줄이진 않는다, 하지만 배고프지 않을때는 먹지 않는다.
  2.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서 조금씩 실천한다.
  3. 하루에 1번 체중을 측정해서 자신에게 자극을 준다.

먹는 것을 무리해서 줄이다간 스트레스만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배가 안 고플때 간식으로 무언가를 먹는 것만 줄여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기로 했습니다. 운동에 대해선 완전히 문외한이라 어떤 운동이 좋은지, 위험한지는 스스로는 판단할 수 없기에, 유튜브에서 홈 트레이닝 전문 채널을 찾아서 영상을 물색한 뒤,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 의사선생님께 운동의 유용성과 안전성 여부를 여쭈어볼 계획입니다.

목표2. 약 줄이기.

의사의 허가 없이 약을 줄이겠다는 정신나간 소리가 아닙니다. 2년 전의 저에 비해 지금의 저는 약이 상당히 많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안전성이 검증된 약이라고 해도 약물로 모든 것을 커버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해나가면서 약을 조금씩 줄여보고자 합니다. 물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요.

목표3. 하고 싶은 걸 하기.

작년의 저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원인은 여러가지 있었죠. 정신건강이 받쳐주지 못하는 부분이라던가, 현실의 삶에 쫒겨 여력이 없었죠. 이런 부분들이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그렇기에 올해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죠.

목표4. 기운내기.

제일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과 1월 초에 걸쳐서 매우 지쳤습니다. 이 탈진 상태에서 탈출하는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선 많은 것이 필요하겠지만 천천히 생각해나가고자 합니다.

가령 이제까지는 힘들어도 힘들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말해도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인간의 대화는 정보전달력이 약해서 제가 얼마나 힘든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힘들 때는 제가 어떻게 힘든지 명확하게 말하려고 합니다.

생존일기.

작년 세웠던 신년계획이 전진만을 바라본 스코어보드였다면, 올해의 목표는 그 다음 해를 생각할 수 있게 살아남기 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올해의 목표를 적은 이 글을 생존일기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일단 살아남자, 살아남고 그 뒤를 생각하자” 라고 말이죠.

사람들은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출발 지점에서, 각자의 코스를, 각자가 원하는 대로 달리는 것입니다. 힘들면 쉬어가도 되고, 달리던 길이 원하던 길이 아니면 다른 길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각자에게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가 있듯 저는 저만의 페이스가 있습니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고, 지금 잠시 쉬더라도 길을 더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신을 재촉하여 불안함과 긴박감에 짖눌리지 않도록, 저는 하루하루의 생존을 걸어나갈 것입니다.